흥미롭기

북극의 발견도 없던 1418년에 이미 세계지도 완성됐다? '천하전여총도'

세계를 뒤흔든 한 장의 지도- 천하전여총도

 

2006년 1월 중순의 어느 날. 필자는 영국과의 시차를 고려하여 늦은 오후에 이르러서야 인터넷을 통해 각종 언론매체의 외신란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틀 전 ‘세계일보’가 예고한 단신 기사에 의하면 세계역사를 새로 써야할지도 모를 놀라운 고지도 한 장이 그날 영국 런던에서 공개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세계역사를 바꿀만할 지도라?

그도 그럴 것이 ‘세계일보’는 그 날 공개될 예정인 고지도가 1418년의 지리지식이 담긴 중세 중국의 지도로, 놀랍게도 오늘날 접하는 세계지도의 지형윤곽이 거의 담겨 있음을 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1418년이라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첫 항해에 나서기보다 무려 74년이나 이른 시기가 아닌가?

필자는 처음에 쉬이 믿기지 않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문제의 지도가 중국의 지도라는 데에 있었다. 무엇보다 중국은 ‘짝퉁’과 ‘가짜’의 이미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데다, 이번 지도의 공개가 한 해 전인 2005년 중국 전역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진 유명한 정화 제독의 첫 항해 6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최근 세계적 관심과 논쟁을 낳고 있는 명나라 정화함대의 항해궤적에 대한 의문, 또 지난 3년간의 필자의 연구내용을 떠올리며 일말의 흥분을 숨길 수 없었다. 더욱이 문제의 지도가 다름 아닌 세계적 권위의 ‘이코노미스트’에 의해 공개된다는 데에 있어 더욱 그랬다.

‘이코노미스트’는 서양 주류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온 160여년 전통을 자랑하는 보수적 시각의 매체가 아닌가? 그런 ‘이코노미스트誌’가 합당한 분석과 검토 없이 자사의 전통과 권위를 실추시킬 행위를 간단히 할 것이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필자의 이러한 의심과 기대는 결국 지도의 공개가 답해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인터넷을 검색하던 필자는 ‘한국일보’와 BBC의 사이트에서 문제의 지도사진을 접하곤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충격과 경이감에 젖어야 했다.

한마디로 문제의 지도는 필자에게 있어서 놀라움 그 자체이자, 일대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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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63년 제작된 천하전여총도

 

‘천하전여총도’
류강이란 이름의 중국인 법률가가 2001년 상하이의 고서점에서 500달러에 구입했다는 천하전여총도는 위의 지도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세계지형의 윤곽이 거의 다 드러나 있다.

지도의 여백에 씌어진 글귀엔 지도의 제작 시기가 청나라 중기인 1763년이란 것과, 그것이 1418년에 제작된 천하제번식공도란 원본지도를 필사한 것이란 내용이 들어있다.

지도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즉 지도가 1418년 제작의 원본지도를 필사한 것이 분명하다면 가히 세계사를 새로 써야하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것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의해 이루어진 아메리카 대륙에로의 항해와, 그것을 단초로 전개된 지리상의 대항해가 서양사회에 부여하기 시작했던 온갖 ‘최초’란 영광의 타이틀을 반납해야 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그에 수반하여 중세 동양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이해, 나아가 그동안 가려지고 숨겨져 온 서양사의 비밀들을 하나씩 드러내는 단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기본적인 역사인식을 토대로 지난 역사를 반추해 본다면, 중상주의를 앞세운 절대주의 중세유럽의 확장, 그것에 기초하여 전개된 산업혁명, 나아가 근대제국주의의 등장이 낳은 저들의 오만과 독선, 폭력은 그 저변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로 상징되는 역사상 ‘최초’라는 우월주의 관념이 깊이 도사리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상 ‘최초’라는 그들의 인식은 올바른 것인가? 필자는 위 지도야말로 그것을 부정하는 하나의 강력한 증거라고 확신한다.

그런 만큼 위 지도의 출현은 필자의 예상대로 세계유수의 언론 및 대중의 관심과 호기심을 자아내고, 더하여 세계 역사학계를 긴장과 술렁거림으로 몰아넣는 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쨌든 필자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위 천하전여총도의 가치를 단번에 깨달았다. 그것은 이 지도가 우리 역사와 놀라운 연관성을 갖고 있음을 필자가 확신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역사와의 놀라운 연관성이라니? 

 남극대룩을 예를 들어 살펴보도록하자.

 

남극대륙

영국의 BBC는 천하전여총도의 공개를 보도하면서 간략한 평을 내놓았는데 중심적 내용은 이렇다.

‘1418년의 원본지도가 있었다는 것은 지도를 그린 사람의 주장일 뿐이다.’

한 마디로 위 지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원본지도가 존재하거나, 존재했다는 어떤 증거는 없다. 그러나 필자로선 그것이 천하전여총도 제작자의 주장일 뿐이라는 BBC의 시각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필자가 보기엔 BBC의 평가는 어딘가 서툴고 서두른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천하전여총도는 2006년 1월의 공개 직후 뉴질랜드의 와이카토 대학에 분석이 의뢰된 상태이다. 분석결과는 후술하겠지만, 공개 당시 BBC는 천하전여총도가 1763년에 제작된 것이란 점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면 BBC의 시각을 전제로 하여, 1418년에 제작되었다는 원본지도(천하제번식공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천하전여총도가 제작된 1763년이란 시기와 지도상의 내용을 비교해보자.

눈 밝은 독자라면 이미 알아챘듯이, 지도상의 남극대륙의 존재가 이 지도의 진실에 중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1763년의 지도에 남극대륙이라니 말이다.

역사의 정설에 의하면 남극대륙은, 1820년 1월 27일 벨링스하우젠이 이끄는 러시아 해군탐험대가 최초로 대륙의 일부를, 다시 3일 뒤인 1월 30일 영국해군의 브랜스필드가 이끄는 탐험대가 오늘날의 남극반도를 목격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오늘날 남극지역의 벨링스하우젠 해, 표트로1세 섬, 알렉산드르1세 섬은 이 때의 러시아 탐험대에 의해, 또 브랜스필드 해협과 브랜스필드 분지 등은 이 때의 영국 탐험대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때 브랜스필드 탐험대는 벨링스하우젠 탐험대와 달리 눈에 띄는 섬마다 영국령이라 선언하여 19C 영국제국주의의 일면을 알려주기도 한다.

어쨌든 1820년에야 그 존재가 드러난 남극대륙이 천하전여총도에 나타난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혹자는 이 남극대륙의 존재로 인해 천하전여총도가 1763년에 제작된 지도가 아니라, 19C 이후에서 현재까지의 어느 시기에 제작된 가짜 또는 위작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상당수 독자들은 중세 유럽의 몇몇 지도에 남극대륙이 나타나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피리 레이스의 지도(1513년), 오론테우스 피나에우스의 지도(1532년), 하지 아메드의 지도(1559년), 제라더스 메르카토르의 지도(1569년), 필립 부아슈(프랑스)의 지도(1737년) 등이 대표적인 지도인데, 현재까지 지도학상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이유는 이들 지도들이 남극대륙이 발견된 1820년 이전의 지도들이라는 점에 있다.

더하여 각 지도에 묘사된 남극대륙의 일정 영역들은 누군가의 실제 탐사를 전제하지 않곤 도저히 그와 같이 묘사할 수 없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기에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유명한 게라더스 메르카토르 외의 나머지 인물들은 그 지도로 인해 유명해지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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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2년 오론테우스 피나에우스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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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남극지도

 

역사의 정설. 그리고 그것과 배치되는 위 지도들의 존재. 이 주제를 다뤄 유명해진 인물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신의 지문’의 작가 그레이엄 헨콕이다. 헨콕의 ‘신의 지문’은 남극대륙이 나타나는 이러한 지도들의 미스터리에서 시작되는데, 그가 내린 주장과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이러한 남극대륙의 지도들은 제작 당시의 문화, 기술, 수학적 능력 등의 전반적 문명 수준과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현 인류가 그런 수준의 지도를 제작할 능력에 도달한 때는 존 해리슨에 의해 경도측정 기구인 크로노미터가 발명된 18C 이후부터이다. … 또한 그 지도들이 보다 이른 시기의 다른 지도들로부터 필사 혹은 참조되었다는 지금까지의 정황증거들을 통해 볼 때 지도의 기원은 현 인류의 기억에서 단절된 오랜 과거에 존재했던 어떤 미지 문명의 산물이다.’

헨콕이 말한 미지의 문명은 놀랍게도 그가 유사 이전에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초고대문명이다. 그런데 헨콕의 초고대문명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다만 여기서 필자가 헨콕으로부터 (비록 그의 주장이 무시할 수 없는 정황들을 담고 있긴 하지만)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진실은, 그가 논리의 전제로 내세운 남극대륙의 지도들이 그의 주장대로 이전의 어떤 지도들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더하여 그 점이야말로 필자와 헨콕의 유일한 일치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위에서 헨콕이 인용한 중세 유럽지도들의 기원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서 커다란 수수께끼에 봉착한다. 그러나 여기선 일단 수수께끼로 남겨두기로 하자.

다만 뒷장에서 다룰 내용을 살짝 귀띔한다면 사실 남극대륙의 존재는 조선에서 제작된 두 종류의 지도에서도 확인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지도들은 이 장의 주제가 아니기에 여기서 다시 천하전여총도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위의 헨콕이 언급한 지도들의 예를 통해 이제 우리는, 단지 (19C 이전의) 지도상에 남극대륙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 지도가 무조건 가짜 또는 위작이라 할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한마디 더 덧붙여, 천하전여총도가 후대의 위작이라면 제작자는 결코 남극대륙을 그려 넣지 않았을 것이란 게 필자의 생각이다. 오히려 불필요한 의심을 살 수 있기에 말이다.

혹시 필자의 생각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가? 그런 독자들을 감안해 이번엔 보다 강한 근거를 들어보겠다.

자, 이번엔 천하전여총도 상上에서 눈길을 유럽지역으로 돌려보자. 독자들의 눈에 유럽의 지형이 어딘가 허전해 보일 것이다. 그렇다, 단번에 영국본토인 브리턴 섬과 아일랜드 섬이 없음을 깨달을 것이고, 나아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가 위치한 스칸디나비아 반도마저 볼 수 없음을 알아챌 것이다.

이 점을 남극대륙의 문제와 대조하여 한번 생각해 보자. 천하전여총도가 후대의 위작이라고 하기엔 지도상의 불균형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우리 자신이 후대의 위작자라는 입장을 가정해 보자. 위작은 남에게 최대한 그럴듯하게, 아니, 진짜보다 더 진짜로 보이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무리할 만큼의 남극대륙을 그려 넣는 과감성에다, 그와 너무나 대조적인 유럽지형에서의 소심함은 위작이라고 생각하기엔 아무래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필자는 지도상의 남극대륙의 존재야말로 역설적으로 천하전여총도가 1763년에 제작된 것이라는 증거의 하나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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