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기

13일의 금요일은 왜 불행한 날 일까요?

사람들은 13일의 금요일이 불행한 날이라고 합니다.

왜 불행한 날일까 궁금하지않으세요?

13일의 금요일은 미국의 한 죄수자로 부터 탄생된 겁니다.

그 죄수자의 이름은 '스티븐러셀'

스티븐러셀은 탈옥수 입니다.

그냥 보통 탈옥수가 아니라 IQ169를 가진 천재 탈옥수입니다. 

얼마나 심했으면 그날에 미국 법무부가 비상 경계령을 내렸을까요?

여기서 놀라운 것은 13일의 금요일만 되면 탈옥을 감행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 눈치 못채셨나요?

13일의 금요일은 한번있는 게 아닙니다.

그럼 13일의 금요일에 탈옥 감행만 하고 성공은 실패?

아닙니다. 성공했습니다. IQ169라니까요....

하지만 곧 잡혀들어 옵니다.

멀리 도망 갈수 있었는 데 스티븐러셀의 그 대담한 배짱으로 인해 교도서와 멀리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사기 치다가 잡힙니다.

그 후에도 수차례 13일의 금요일 마다 탈옥하고 또 잡혀들어 오고 이러니 미국 법무부가 비상 경계령 까지 내려가며서 탈옥을 막고자 한거 아닙니까..

이 사건은 결국 1998년 4월 5일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스티븐 러셀은 체포됐고 그는 미국 정부와 텍사스 정부로부터 144년 형을 선고 받고 이 사건은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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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스티븐러셀>

 

 

미국인들을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13일의 금요일을 앞둔 11일 밤 미국 법무부가 경계령을 내린 남자 '스티븐러셀' 과연 그는 누구일까?


이 경계령은 해리스 카운티 교도소의 한 재소자 때문에 내려진 것이었다. 그는 1990년 감옥에 수감된 이후로 13일의 금요일마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탈옥한 전대미문의 탈옥수였다.

 

때문에 당시 미국 법무부가 그를 막기 위해 경계령까지 내린 것. 그런데 1966년 12월 13일 그는 또 다시 탈옥에 성공했다. 그는 바로 '스티븐 러셀'이었다. 그는 '스티븐 린드 러셀', '스티븐 조지프 러셀' 등 무려 14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나 모두 가명이다.

 

또한 그는 변호사, 판사, FBI요원, 의사 등 각종 전문가로 활동했지만 이 모든 것도 그가 만든 사기 행각이었다.

 

1970년 스티븐 러셀이 13살 되던 해, 양부모에 의해 하노버 소년원에 들어가게 됐다. 분노 조절 치료가 목적이었다. 방학동안 일부러 치아교정기를 착용했는데, 치아교정기를 핑계로 치과를 들락거리던 중 소년원을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사람을 속이는 일이 쉽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1992년 절도죄로 해리스 카운티 교도소로 잡혀오게 됐다. 체포 당시 그는 90일이라는 약소한 형량을 받았지만 감옥이 지루하다는 이유로 첫번째 탈옥을 계획했다.

 

스티븐 러셀은 재소들의 사복을 빼돌려 달아나기로 결심했다. 모범수가 되면 교도소 내 이동이 자유로웠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모범수가 되어 교도관들과 친분을 쌓은 뒤 교도관들의 무전기를 훔쳐 1992년 5월 13일 탈옥에 성공했다.

 

이후 스티븐 러셀은 13일의 금요일을 행운의 날로 삼았고, 13일의 금요일마다 탈옥을 감행했다. 탈옥 후 북미의료사업체에 취직한 스티븐 러셀은 2년 여동안 수천 달러의 공금을 횡령했다. 결국 직장 상사의 의심을 사 보험 사기로 1995년 다시 수감됐다.

 

첫 탈옥 후 교도소에서 도망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이후 계속 탈옥을 감행하게 됐다. 그는 1996년 서류를 위조해 자신의 가석방 보석금을 90만 달러에서 4만 5천 달러로 조작해 두번째 탈옥에 성공했다.

 

하지만 같은 해 또 다시 수감됐고 12월 또 다시 탈옥하기로 결심했다. 의무실에서 의료인 출입증을 훔쳐냈고 의사들 가운과 출입로를 알아뒀다. 동료에게 구한 흰색 죄수복을 녹색 매직으로 염색해 의사 가운으로 위장했고 1996년 12월 13일 그 가운을 입은 채 세 번째 탈옥을 했다.

 

그가 탈옥 후에도 범죄를 일삼았던 이유는 다름 아닌 연인 제임스 때문이었다. 스티븐 러셀은 자신이 탈옥수임을 모르는 연인과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이처럼 스티븐 러셀이 탈옥에 성공한 이유는 1957년 태어난 지 5일만에 친부모에게 버림 받은 그가 친부모를 찾기 위해 경찰이 됐고 이 과정에서 IQ 163의 비상한 두뇌로 쉽게 국제 법률 진행 텔레커뮤니케이션 서비스 등 경찰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치밀한 계획과 빈틈없는 조사로 경찰 수사망을 파악해 한 발 앞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1996년 또 다시 체포된 그는 2년 뒤 건강 상태가 악화 되어 요양원에 가게 됐다. 체포 당시 90kg의 몸무게가 69kg으로 감소하며 쇄약해졌다. 그의 병명은 에이즈였다. 이후 텍사스 주 사면 가석방 위원회에서 의료기록 조사 후 그가 죽음을 목전에 둔 상태라고 판단하고 특별 가석방을 허락했다. 그는 1998년 3월 13일 요양원을 떠났다.

 

이후 스티븐의 가석방 담당자는 그의 사망증명서 한통을 받았다. 스티븐 러셀은 잦은 탈옥으로 미국 법무부와 텍사스주 정부의 위상을 떨어트린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1998년 4월 5일 텍사스 해리스 카운티 법원에서 한 수감자의 가석방 재판이 열린 가운데 변호인의 활약 덕분에 원고의 승리로 재판은 끝이 났다. 그런데 법원으로 들이닥친 경찰이 변호사에게 수갑을 채웠다. 놀랍게도 체포된 변호사는 사망한 걸로 알려진 스티븐 러셀이었다.

 

그는 1996년 다시 교도소로 잡혀 온 이후 에이즈 환자 행세를 하기도 한 것이었다. 그날 부터 그는 에이즈에 관한 모든 책을 읽고 최대한 에이즈 환자로 보이기 위해 식사량을 4분의 1로 줄여 체중을 감소했다.

 

그는 동료 수감자의 도움으로 새롭게 진료기록을 만들어냈고 조작한 진료기록은 교도소 내 우편 시스템을 이용해 의료파일에 넣어두었다. 놀랍게도 그가 에이즈 환자 행사를 하는 동안 의료진들은 단 한번도 혈액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요양원을 떠나 가짜 사망확인서를 담당자에게 보내 영원한 탈옥을 꿈꿨다.

 

하지만 1998년 4월 5일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스티븐 러셀은 체포됐고 그는 미국 정부와 텍사스 정부로부터 144년 형을 선고 받으며 탈옥의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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